<새전북신문>
2008년 04월 02일전라도가 내 고향은 아니다. 그래도 직장을 따라 전북에 와서 산지 거의 10년이니, 아주 새잡이는 아닌 셈이다. 그동안 군산과 전주에서 번갈아 살았다. 또 새만금 권역의 문화를 연구한답시고 부안, 김제, 정읍, 고창 등 전북 서부 곳곳을 꽤나 돌아다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전북이 고향보다 더 편안하고 지인이 많은 고장이 되었다. 그렇지만 전북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여전히 외부인일 터이다.
그런데 한 지역에서 줄곧 살아온 사람들이 정작 자기 모습을 잘 못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오히려 외부인의 시각에서 더 잘 포착되곤 한다. 그러니 어중간한 전라북도 사람, 아주 새잡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원주민도 아닌 처지에서 하는 이야기를 한 번쯤 경청해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니 그다지 자격은 없지만,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전라북도에 대해 내키는 대로 지껄이는 몇 마디를 가볍게 들어주시라.
들어와 살아보니 전라도는 ‘정나도’다. 어디서나 정이 나고, 정을 나누고, 나눠도 정이 남아돈다. 어느 날 막걸리 술판에서 “정이 크게 펼쳐지고, 정에 휩싸이고, 정이 아름다운 고장이라, 전라북도는 정나도(情羅道)다!”라고 했더니 좌중이 박장대소를 했다. 확실히 ‘정’은 전라북도를 움직인다. 무엇보다 정은 전북의 사상과 예술과 문화에 힘을 불어넣는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이다. 전북의 소리와 가락 그리고 음식에는, 아직 얼치기 전북인인 나 같은 사람이 도저히 체득하기 어려운 정감의 리듬이 실려 있다. 아주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느끼고 피에 스미고 몸의 일부가 되어야 비로소 체화될법한, 그런 깊고 끈끈하고 풍부한 정감이다.
정은 개인과 개인 간에 오가는 사적이고 은밀한 소통이다. 정을 나누려면 마음을 터놓아야하고, 서로 흉허물이 없어야 한다. 깊은 정을 나누면, 상대의 잘잘못 따위는 질끈 눈감고 시시비비를 너그러이 초월할 수 있다. 도를 닦는 높은 정신 경지에서, 예술 영역에서, 심지어 이웃사촌 간에도 너그럽고 깊은 정은 미덕이고 훌륭한 품성이다. 하지만 모든 사물에 양면이 있듯이, 전북을 전북답게 하는 ‘정’이 때로는 전북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되기도 한다.
특히 사적인 관계를 넘어 공공 영역으로 확장된 ‘정’이 문제가 된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낮 설던 풍경 하나. TV에서 지역방송을 보는데, 전북의 내로라는 기관장과 정치인 심지어 대학 수장들까지 모인 회합이 끝나자 서로 “형님, 동생”하며 “잘 가시오” 운운한다. 순간 뜨악했다. 또 다른 풍경 하나. 공개석상에서 만난 공무원과 기자들이 예의 “형님, 동생”으로 살갑게 악수한다.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던 전북살이의 풍경들이다. 정이 나도 너무 티 나게 정이 나고, 공적인 문제를 사사로운 정분을 통해 풀려는 성향이 다른 지역보다 유독 강하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서야 나는 그것이 ‘정나도’의 딜레마임을 알게 되었다.
사회의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정’이 과도하게 작용하면 불공정과 특권을 키운다. 특권은 부패와 무능을 낳는다. 사적 관계에 치우쳐 공적인 의식이 자라지 못하면, 정이 남다른 이들끼리의 패거리와 집단주의가 팽배하게 된다. 우리 고향, 우리 학교 출신, 우리 교회 따위의 사적 관계가 각급 기관과 조직의 공적인 권한과 책임을 침범하고, 그것은 마침내 전체를 망치고야 만다. 하여, ‘정나도’인 전라북도는 어쩌면 “그놈의 정 때문에” 공적 영역의 무능, 부패, 혼란, 그리고 무사안일을 방치하고 키워왔는지 모른다.
사실 전라북도는 문화와 예술의 천재들을 많이 낳았지만, 정치와 공공 영역의 탁월한 지도자는 별로 배출하지 못했다. 정나도(情羅道)인 탓이 아닐까. 사적인 정분에 끌리는 정치(情治)는 작은 정치다. 큰 리더십은 모름지기 공정하다. 공자의 말처럼, ‘정치(政)’는 곧 ‘공정(正)’이다. 공정하려면 맺고 끊는 판단이 정확해야 한다.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이런 판단의 최종적 주체는 시민이다. 시민의 판단이 공정해야, 시민은 다시 선출된 정치인에게 공정한 리더십과 정치역량을 주문할 수 있다.
이제 또 판단의 계절이 왔다. 이번 총선에서는 전북 도민들이 제발 정(情)나지 않기를. 우리 고향, 우리 학교, 우리 교회 따위의 사적 정분에 전라북도 전체의 운명을 걸지 않으면 좋겠다. 전라북도가 문화와 예술의 정감이 넘치는 ‘정나도’일뿐 아니라, 정치와 공공 영역에서도 공명정대한 ‘정나도(正羅道)’로 거듭나길 바란다. 우리처럼 힘없는 묵객과 예술가와 백성들이야 서로 정나도 좋지만, 도지사와 국회의원과 시장 군수와 기관장과 공무원과 기자들이 끼리끼리 정나면 이건 곤란하다. 얼치기 전북인의 ‘정나도’ 타령, 오늘은 여기까지다.
/김성환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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