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망치한(脣亡齒寒)을 생각한다
 
기원전 7세기, 중국 춘추시대 말엽에 ‘우’와 ‘괵’이라는 작은 나라가 이웃해 있었다. 그런데 강성한 진(晉)나라가 괵나라를 정벌할 야심을 품고 우나라 군주에게 뇌물을 주며 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우나라의 현인 궁지기(宮之寄)는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길을 빌려주면 안 된다고 간언했다. 그러면서 궁지기가 던진 유명한 말이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이다. 그러나 재물에 눈이 먼 우나라 군주는 이 말을 듣지 않았고, 궁지기의 예견대로 진나라는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마저 멸망시킨다.

지난해 8월 삼성경제연구소가 4백여 명의 성공한 CEO를 상대로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가장 힘이 된 습관”을 사자성어로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CEO 5명 중 1명꼴로(19.7%)로 ‘순망치한’을 압도적 1위로 꼽았다. 독불장군은 없고, 세상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는 이야기다. 시장과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숭배하고, 무한경쟁의 복음을 전파해야 마땅할 것 같은 한국 대표 CEO들의 답변치곤 다소 의외다 싶다. 어쨌거나 ‘순망치한’과 ‘무한경쟁’의 역설이 반드시 배치되는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하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협력’은 자연에서도 필수적이지 않은가. 사자들을 보라. 초원의 노련한 사냥꾼인 사자들도 수 십 마리가 떼 지어 살면서 ‘공동 작전’을 펴서 사냥감을 노획한다.

그런데 어느 날 독불장군 사자가 자기 무리의 다른 사자들을 죄다 물어죽이고 내치면서 무리 내부를 ‘무한경쟁’의 정글로 몰아가면 어떻게 될까? 사냥에 필요한 전력과 전의를 상실한 사자 무리는 결국 초원에서 도태되어 사라질 것이다. 물론 사자들은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세상의 성공하는 CEO들처럼 사자들도 ‘순망치한’의 지혜를 본능적으로, 그리고 경험칙(經驗則)으로 잘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금수보다 어리석을 때가 많다. 자연계의 생명체들은 본능적으로 순망치한의 이치를 터득하지만, 사람은 본능보다 자기 욕심과 이념에 더 복종하고, 그래서 독단에 쉽게 빠진다. 이런 독불장군의 정신은 유아적이고, 성장이 덜된 상태에 머문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런 사람을 ‘소인’이라고 했다. 어리석은 우나라 왕이 나라를 망친 것처럼, 소인이 리더가 되면 무리가 불행해진다. 소인은 자기가 아는 세계를 세계의 전부의 양 착각하고, 협소한 경험과 신념, 시기심과 우월감, 그리고 비좁은 소견 등으로 무리 전체의 운명을 도탄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 무리의 사자들을 물어뜯는 사자처럼, 그들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약화시킨다.

그런데 지금 신자유주의 이념의 광풍이 온 나라를 휩쓸면서 소아병적인 ‘경쟁’의 식견이 창궐하고 있다. 나라의 지도층이기 전에 이른바 ‘강부자’인 사람들은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순망치한을 무시하고, 한우 사육농과 농사꾼 없이도 도시민의 생존이 지켜진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이기 전에 서울시민인 사람들은 수도권과 지방을 분열시키고, 지방 경제와 교육의 황폐화를 지방의 무능 탓으로 돌린다. 돈을 만물의 척도로 삼으며 기초학문이 다 붕괴돼도 실용학문만 융성하면 된다는 기이한 ‘경쟁'의 잣대가 대학의 지성을 뒤흔든다. 마치 “입술이 다 상해도 이빨만 성하면 된다”는 단견을 가진 치과의사처럼, 단순하고 맹목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리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에서 무리간의 ‘경쟁’이 피치 못할 상황이라지만, 무리의 생존력이 구성원의 ‘협력’을 구하는 리더십에서 생긴다는 최소한의 경험칙마저 망각되고 있다. 초원의 사자들조차도 그것을 알고 있건만,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왜 이리 소아병적이고 잔인해지기만 하는 것인가? 순망치한의 관계를 살피는 지혜가 그립다.

/김성환 군산대 교수              <새전북신문> 2008년 0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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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환 | 2008/04/29 09:57 | Nomad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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