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종주국 복귀 노리는 ‘동아시아 사상 제패’의 속내(3)
신동아  2007.07.01 통권 574 호 (p548 ~ 561)

현대신유학의 태동


오늘날 중국철학의 추이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지난 백수십여 년 동안 중국에서 일어난 철학적 변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불 연합군의 승리로 아편전쟁이 끝난 직후인 1860년대 초부터 중국 지식인들은 본격적으로 서양을 배우기 시작한다. 웨이위안(魏源) 등이 오랑캐를 배워 오랑캐를 이기자며 ‘이이제이(以夷制夷)’와 ‘사이제이(師夷制夷)’를 제창했고, 그 구호 아래 쩡궈판(曾國藩) 쭤쭝탕(左宗棠) 리훙장(李鴻章) 등이 주축이 된 양무(洋務)운동이 펼쳐졌다. 그러나 1895년 예상치 못한 일본과의 전쟁에서 청나라가 다시 패하면서 양무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본래 ‘양무’는 중국의 정신문명을 보존한 채 서양의 과학과 군사 기술을 배우자는 이른바 ‘중체서용(中體西用)’ 방식의 운동이었는데, 이제 이는 근본적인 회의에 직면했다. 대신 입헌군주제의 정치체제와 자유민권의 사상적 개혁을 수반하는 보다 혁신적인 변혁, 즉 ‘변법(變法)’을 시행해야 한다는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캉유웨이(康有爲) 탄쓰퉁(譚嗣同) 옌푸(嚴復) 량치차오(梁啓超) 등이 그 대표적 논객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변법운동 역시 무술정변의 격동 속에서 실패하고 만다. 신분제의 탈피와 내각제도의 정비 등 폭넓은 사회정치적 개혁을 추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통 사상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여전히 강했고, 또한 몇몇 지식인의 급진적 구호에 머물러 사회변혁을 추동할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것이 한계였다.


그리하여 20세기에 들어서자 전통과 단절하려는 지식인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1919년 5·4운동으로 상징되는 신문화운동이 그들에 의해 촉발됐다. 신문화운동은 신해혁명으로 공화정이 수립됐는데도 유교의 국교화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황제추대운동 등이 일어나는 데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천두슈(陳獨秀) 리다자오(李大釗) 후스(胡適) 등 신문화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지식인들은 당시 중국의 보수적 상황이 유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유교와 공자가 2000년 중국 전제정치의 정신적 지주이며 인간해방을 방해하는 봉건적 정치윤리문화의 근간이라고 비판하고 전통사상을 총체적으로 부정한다(打倒孔家店). 그리고 이를 대체할 대안으로 ‘민주’와 ‘과학’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근대사조를 받아들이고자 했다.


한편 이 시기에 근대적 철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철학과를 설치한 고등교육기관은 베이징대학이다. 1914년 베이징대에 철학과가 개설될 당시의 명칭은 ‘철학문(哲學門)’으로, ‘중국철학문(中國哲學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학과가 20세기 ‘중국철학’의 요람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이는 그 뒤 현실로 구체화한다. 신문화운동의 주요 논객이던 후스와 천두슈 등이 초창기 교수를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슝스리(熊十力) 량수밍(梁漱溟) 펑유란(馮友蘭) 탕융퉁(湯用?)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베이징대 철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현대 중국철학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이 학과의 졸업생으로 펑유란과 모쭝싼(牟宗三) 등이 각각 중국과 대만에서 현대신유학 담론을 주도했다. 1920년에는 오늘날 난징(南京)대 전신인 중양(中央)대에도 철학과가 개설됐는데, 팡둥메이(方東美)와 탕쥔이(唐君毅) 등이 이곳의 교수를 역임했다. 이들은 훗날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권을 따라 대만으로 가서 타이완(臺灣)대 철학과 등에 재직하며 역시 현대신유학의 담론을 이끌게 된다. 이들이 흔히 ‘현대신유가’ 내지는 ‘현대신유학자’ 등으로 불리는 대표적 학자들이다.


국가가 나선 ‘유교 중흥’의 위험성


대륙과 대만을 망라해 20세기 중국철학의 담론을 주도한 학자군은 위에서 언급한 ‘현대신유가’다. 현대신유가는 5·4운동 이후 중국과 서양의 문화가 충돌하는 복잡한 국면에서 형성됐으며, 공자와 유교에 대한 비판이 고조에 달한 신문화운동 시기에 공개적으로 유학 수호의 기치를 들고 나섰다.


현대신유가는 일제의 침략으로 중국이 위기에 처한 시기에 점차 힘을 얻었다. 1930년대에 본격화돼 1945년까지 이어진 항일전쟁은 중국의 민족정신을 고취하며 민족문화의 부흥을 외치는 현대신유학의 발흥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동시에 서양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현대신유가의 논객들은 비교적 체계적이고 완비된 철학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이론 역량도 갖추게 된다.


하지만 1949년에 중국이 공산화하면서 현대신유학자의 상당수가 대만과 홍콩 등으로 이주했다. 이어서 중국에서 문화대혁명(1966~76)이 일어나면서 중국의 사상·문화·종교 전통, 무엇보다 유교가 철저하게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대신 같은 시기에 대만과 홍콩의 현대신유가는 중국 사상 전통의 옹호와 현대적 재해석에 몰두했다. 한편 문화혁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중국에서 다시 새로운 문화 열풍이 일어난다. 특히 하버드대의 두웨이밍(杜維明)을 필두로 하는 화교 학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1980년대에 현대신유학이 중국으로 유입돼 단기간에 크게 확산된다.

현대신유학자들은 대개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심성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중국 전통(유학)이 서양보다 우월하다고 여긴다. 그러면서도 이를 논증하기 위해 서양철학의 방법론을 즐겨 쓴다. 게다가 그 문제의식과 목표는 통속적인 민족주의와 결합되는 경향을 보인다. 리쩌허우(李澤厚)는 이런 현대신유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개괄한다.


"신해혁명과 5·4운동 이래 20세기의 중국 현실과 학술 토양에서, 공맹의 유학과 정주학(程朱學), 육왕학(陸王學)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이를 중국철학 혹은 중국사상의 근본정신으로 삼을 것을 강조하고, 동시에 이를 주체로 서양 근대사상(‘민주’와 ‘과학’ 등)과 서양철학(베르그송, 루소, 칸트, 피히테 등)을 흡수하고 개조해, 현대중국의 사회 정치 문화 등의 영역에서 현실적인 출구를 찾고자 했다." (李澤厚, ‘中國現代思想史論’, 天津社會科學出版社, 2003년, 261쪽)

몇 가지 핵심을 다시 정리해보자. 중국의 현대신유학은 ▲서구 제국주의의 동진에 따른 중국 민족(문화)의 위기를 배경으로 등장했고 ▲유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유학의 이념을 주체로 서양의 사상과 철학을 변용하며(中體西用) ▲현실에 적합한 이론을 모색한다. 각각 뚜렷한 문제의식과 목표, 구체적인 방법론과 현실성이 있었던 셈이다.


현대신유가의 문제의식, 목표, 현실성의 중심에는 모두 ‘중국’ 내지 ‘중화’라는 국가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주제가 자리잡고 있다. 즉 중국의 위기에서 중화의 전통을 지키고 여기서 중국의 현실 문제 해결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철학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으므로 서양철학의 논리와 방법들을 활용한다. 물론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고민하고 또한 주체적인 각도에서 서양철학을 수용하고 변용하는 태도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것은 주체적인 고민이 취약한 한국의 철학자들이 오히려 배워야 할 점인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의 지식인들이 과도하게 ‘주체적’이라는 데 있다. 그들은 민족주의에 경도되고 또 그 안에 갇혀서 민족에 대한 자신들의 지나친 애정이 초래하는 위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한계를 쉽게 노출한다. ‘중화의 우수성’이 그들 사유의 선험적 전제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중국 지식인들의 민족주의 정서는 맹목적이다. 현대신유가 역시 이런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 문화의 우수성을 선양하려는 목표의식이 강하다 보니 그들의 사유가 ‘민족’의 테두리에 갇혀 보편성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담론은 민족과 국가를 앞세우는 권력의 이념적 도구로 쉽사리 전락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신유학은 대만에서 국민당의 일당독재와 권위주의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사례가 있다. 사회주의 이념이 퇴조한 중국에서 오늘날 다시 유교를 중시하고 나선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 최근 중국에서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유교를 재평가하고 선양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는데, 그 배후에 현대신유학의 사상적 영향력이 작동하고 있다.


‘궁극적 우월성’을 추구하려는 욕망은 종종 민족주의나 종교근본주의 따위의 폐쇄적 이념으로 구현되고 그것이 다시 국가권력과 만나 치명적인 괴물로 변하곤 한다. 이는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나치즘과 군국주의, 그리고 21세기에 문제가 커진 기독교 근본주의나 이슬람 근본주의 등이 모두 비슷한 사례다. 오늘날 현대신유학 또한 통속적인 중화민족주의와 결합해 그런 전철을 답습하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의 국력이 강해지면서 그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증대하는 것이 오히려 심각한 문제다.

(계속)

by 김성환 | 2007/07/01 11:18 | Nomad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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