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07.01 통권 574 호 (p548 ~ 561)
‘천하 맹주’의 꿈과 민족주의
아시아 국가들, 특히 일본을 비롯한 한국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등이 1970~80년대에 놀라운 고도성장을 이뤘다. 그 원인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서구 학자들과 언론들은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이들은 대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이 이 지역의 문화적 공통성, 특히 유교 전통에 뿌리를 둔다고 보았다. 한편 이런 논의를 토대로 일부 학자들은 막스 베버의 ‘문화론’에 입각해 유교가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의 주된 원동력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곧 ‘유교자본주의론’이다.
이 논의는 현대신유가의 전통을 계승한 학자들, 특히 구미에서 활동하는 화교 학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심화됐다. 그런데 1997년 금융위기가 아시아를 강타하자 아시아적 가치나 유교자본주의가 도리어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반전이 일어난다. 한때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주목받던 가족주의, 협력적 인간관계,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유대, 조직에 대한 충성심 등이 이번에는 망국적인 족벌자본주의를 키우는 토양이자 관료주의를 심화하는 요인으로 비판받기 시작했다.
사실 그 출발 단계부터 ‘아시아적 가치’나 ‘유교자본주의’ 이론은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 우선 경제발전에서 문화적 요인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세계 경제체제의 구조나 변동에 대한 분석을 빠뜨렸다. 둘째, 유교의 특정 요소를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특정 요소에 꿰맞춰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풀이한다. 셋째, 개발독재와 국가지상주의를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다. 기업과 국가를 ‘가족’의 문맥으로 해석해 ‘계급화해’와 ‘조화사회’의 구호를 만들어내지만 이는 사실상 기업주와 국가권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넷째, 동아시아 문화를 ‘유교’라는 단일하고도 결정적인 요소로 단순화하는데, 이는 동아시아 문화의 복합성과 다양성을 무시하는 위험하고도 추상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중국이 직면한 실존적 상황에서 볼 때 ‘유교문화권’이나 ‘유교자본주의’ 등의 담론은 분명한 현실적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중국의 ‘국학’이다. 지금 온갖 종류의 동아시아 담론이 중국 학계로 빨려 들어가 ‘국학’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이런 국학은 중국의 현실 문제 해결에 일정하게 기여한다. 이에 관해서는 앞에서 상세하게 설명했으므로 여기서 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근대 중국철학의 태동기부터 집요하게 계속된 국학 탐구가 중화주의 세계관에 뿌리를 둔다는 사실은 다시 지적해야겠다. 그러니 중국의 국력이 무착륙 고공 성장을 계속하는 세기를 맞아 국학 열기가 전에 없이 고조되는 것은 곧 중화주의 세계관의 현대적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천하의 중심이었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중국과 중국인이 지금 유교 종주국의 위상 되찾기에 전면적으로 나섰다.
누가 미래의 사상을 열 것인가
중국의 이런 시도가 가깝게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멀게는 인류 문명의 발전과 정신의 진화에 얼마나 기여하게 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희망적이라기보다 우려되는 바가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중심-반주변-주변의 중층적 구조로 이뤄진 근대의 세계체제에서, 동아시아는 ‘반주변’ 내지 ‘주변’에 위치했다. 그곳에서 동아시아의 근대주체들은 중심을 동경하면서도 이에 대항하고, 변방의 이웃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도 이를 억압하는 분열적 증세를 드러냈다. 동아시아 근대의 이런 이율배반은 근대의 중심 밖에서 형성된 ‘변방’ 근대의 전형을 보여준다.
오늘날 동아시아인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이런 이중적 자기모순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즉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해방되는 것은 물론 동아시아의 이웃들과 호혜적이고 조화로운 평화의 연대를 이뤄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오염된 ‘동아시아’ 내지는 ‘동양’의 거품을 걷어내야 하는데, 그 거품의 상당 부분은 동아시아를 유교라는 하나의 코드 안에 가둬보고 또 그것을 중국의 것으로 환원하는 주장과 관련돼 있다. 중국이 이런 독단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이념에 몰두하는 것은 분명 불길한 징조다.
미래의 중국은 과연 동아시아 여러 민족과 국가의 친근하고 든든한 이웃이 될 것인가,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천하 맹주’의 옛 기억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선택은 중국의 몫이지만 그 행로에서 동아시아 다른 국가의 태도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특히 어느 때보다 사상과 문화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이 사상과 문화의 영향력을 앞세워 대국의 길로 가려 하는 만큼 이에 대응하는 사상과 문화의 저력을 충분히 비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비단 중국 때문만도 아니다. 바야흐로 21세기의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누가 주도하느냐를 놓고 전세계에서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는 시점이다. 여기서 우리의 사상과 문화적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답변은 독자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겠으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부분이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도 중국이지만, 실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 사상과 문화의 진흥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성환 국립군산대 교수·중국철학 asia@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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